오늘 편지 내용으로 인해 논란이 되고 있는 기사에 대한 제 생각을 제목으로 적었습니다.
p.s.1 딱 이 말만 하시면 되겠지요.(종북 및 창조과학에 대한 비판 상실에 대한 반론으로 나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써 보았습니다.)
"나는 부산에서 아버지를 뒤따라 의사를 한다는 것이 내 꿈으로 생각했다. 그런데, 여기 부산에서는 나와 아버지께는 대선배가 되는 분이 월남을 하여, 반평생 가까이 만나지 못한 배우자와 가족들을 기리다가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나리라는 희망으로 크리스마스에 이승을 떠나셨다. 그 분은 일제시대 유능한 스승의 제의를 거절하고, 평양에서 의술을 베풀었고, 그 누구도 그에 대한 원망을 하지 않아 전쟁 이전 김일성 정권에서 건드리지 못하는 예외였다. 더욱이 김일성은 그 분에게서 수술을 받았으니, 건드리기는 힘들었을 것이다.
그러다가 전쟁이 터지고, 김일성 자기자신에게 유리했던 전황이 유엔군으로 인해 반전되어, 불리하자, 자기 지시에 따랐던 부상당한 병사들을 적화통일하려던 지역의 지도자처럼 내던지고 도망쳤다. 그 지도자가 도망친 평양에서 그 분은 당연한 일이라고, 병원을 지키고, 수술을 하고 있었다. 그것이 국군과 만나게 된 이후, 중공군의 개입에 자의이든 타의이든 월남을 하였다. 그 때에 가족들과는 둘째 아들만을 데리고 있던 탓에 영원히 다시 만나지 못 하였다.
월남한 이후, 부산에서 그는 전문적 지식으로 호의호식 대신에 돈없이 죽어가던 이들에게 다가셨다. 물론, 그러한 방법이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. 그러한 문제를 헤처나가기 위한 대안에 여러 의사와 간호사와 민간인들이 손을 합쳤다.
미국과 유럽이 취하던 의료보장에 대한 공통적 이점을 취하여, 한국 의료보장제도 역사에 길을 남긴 선각자들이었다. 그리고, 그 분이 살아왔던 인생에 있었던 각종 책임들이 그 집단. 청십자의료조합이 대한민국이라는 정치집단이 세계라는 무대에 오를 한가지 기반을 마련하였다.
사상대결이라는 측면에서야 만들어낸 독재자와 달리, 이들은 대한민국 주권자들에게 진정한 침략자들에 맞선 책임자들이었다.
몇 년 전에 북의 의료보장에 대한 지도자들의 의식이 무개념이라는 점을 부정한 한국정부에 항변한 독일인 의사가 기억이 난다. 그 의사가 만일 살아 생전 그 분을 만났다면, 더 어처구니 없는 현실에 한탄을 하고 있었을까?
p.s.2 이 말을 듣고, 국가원로들이 항변하면, 전 세계는 한편의 희극을 보는 역사를 다시 만들겠지요.